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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바람이 모이는 곳, ‘바람의 언덕’

4월 1일 업데이트됨




우리의 바람이 모이는 곳, 영화 ‘바람의 언덕’


글쓴이_양혜영 소설가


봄이 되면 동네 공터에 천막이 들어섰다. 천막 안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반짝이 의상을 입은 콧수염 아저씨의 마술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고, 박수를 치며 돌아다니는 원숭이의 재롱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걷지 못하는 사람을 벌떡 일어 세우는 만병통치약이나 무희들의 화려한 공연이 아니었다. 공연 마지막에 조명을 끄고 커튼 위로 비추는 흑백 영상. 나는 어둔 천막에서 환하게 번지는 영화를 보는 게 가장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을 켜도 사람들은 상기된 얼굴로 낡은 화면 속 주인공을 이야기하느라 집에 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 큰 극장이 들어서고 더 이상 천막 극장에서 흑백 영화를 볼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천막 극장 안을 은은히 비추던 흑백 영상에 반사된 사람들의 모습이 가끔 떠올랐다. 제주에 독립영화정기상영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기사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예전에 봤던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과 뜨거운 수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영상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 영화 상영 후 이어지는 GV에 관람 때와 다를 바 없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독립영화만이 가진 매력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약속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주는 믿음과 친숙함이랄까. 그런 특별함이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있다.

그러니 혼듸독립영화제 혼듸관객평론단과 함께 한 영화 ‘바람의 언덕’ GV가 특별하고 즐거운 것은 당연했다.

유랑극단처럼 전국을 돌며 관객과 직접 만나 소통하겠다는 감독과 배우들이 상영회를 시작한 순간부터 함께 웃고 울며 영화를 보고 마주앉아 나누는 진솔한 대화의 시간까지. 찬 겨울바람이 부는 날이었음에도 GV가 진행된 소극장 안은 뜨거운 열기로 후끈했다.






좋은 영화는 좋은 사람들이 만든다.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만난 좋은 사람들은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1시간 30분으로 예상했던 GV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출출한 관객들을 위해 혼듸독립영화제 서태수 집행위원장이 바비큐를 굽고, 김태희 배우가

잡아 온 생선회를 올리고, 장선 배우가 팬에게 받은 케이크로 뒤풀이 상을 준비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멋진 한 상에 모두가 놀랐다. 독립영화 뒤풀이가 아니고서 어디서 관객과 감독, 배우가 한데 어울려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을까. 그런 모습은 독립영화 GV가 아니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독립영화라서, ‘바람의 언덕’이란 좋은 영화가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GV를 진행하다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관객의 해석과 질문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번 ‘바람의 언덕’ 상영회에선 그런 순간이 더 많았다. 그 중에서도 ‘바람의 언덕’에서 보여주는 ‘바람’이 자연현상이 아닌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의 ‘바람’같다는 관객의 말은 GV가 끝나고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바람 한 자락을 지니고 살아간다. 때로는 호수 위 물결처럼 가벼운 흐름으로, 때로는 생을 뒤바꾸는 격정적인 폭풍으로. 각기 다른 이름과 형태의 바람이 가슴으로 예고 없이 불어 들어온다.


그날 ‘바람의 언덕’을 본 후, 내게 새로운 바람 한 자락이 불어왔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영화를 오래도록 나누고 싶다는 바람. 아마 그날 그곳에서 ‘바람의 언덕’을 함께 본 관객과 제작진의 가슴에는 나와 같은 바람이 자리 잡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작은 바람들이 모이고 모여 머잖아 거대한 독립영화의 언덕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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